【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원장】
계속되는 부부싸움 끝에 별거라는 도피처를 찾아가는 부부가 적지 않다. 이혼이라는 최악은 피했다고 안도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미운 감정이 누그러져서 합치고, 변한 게 없음에 실망하고 다시 별거를 택한다. 그렇게 동거와 별거를 반복하는 대부분의 부부가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감정싸움에 지쳐서, 무관심에 질려서, 다시 사랑받고 싶어서 별거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별거의 숨은 얼굴을 똑바로 봐야 한다. 이혼의 전주곡, 별거에 대해 알아본다.
CASE 1.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는 남편 이야기
두 달 전, 술자리를 12시까지 끝내고 귀가하기로 아내와 약속한 광준 씨(가명)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새벽 2시 30분쯤 집에 들어가려고 현관문 번호키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여러 번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포기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안 받아서 다시 해보려는 순간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현관 비밀번호 바꿨어. 앞으로 집에 오지 말고 혼자 마음대로 살아!”
순간 이성을 잃고 현관문을 세게 두드렸다. 하지만 끝내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광준 씨는 찜질방에 가서 쪽잠을 자고 출근했다.
그날 오전 한창 일하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광준 씨의 짐을 싸서 본가에 갖다 놓고 갔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너무 화가 나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갔다. 여전히 비밀번호를 풀 수가 없었다. 공구를 구해 와서 번호키를 뜯어내려고 하자 놀란 아내가 문을 열었다. 이때다 싶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행용 가방에 아내의 옷을 손에 잡히는 대로 담았다. 아내가 말리자 광준 씨는 부모님 돈과 내 돈으로 산 내 집이니까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참을 싸우다가 결국 아내가 짐을 싸서 나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그 후로 광준 씨와 아내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문득 아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만 비밀번호를 바꾸고 본가에 짐을 갖다 놓은 행동은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
CASE 2. 별거를 자처한 아내 이야기
5년 전, 영주 씨(가명)의 남편은 같은 동호회 여자 회원과 바람을 피우다가 걸렸다. 그런 남편과 한집에 사는 게 끔찍했지만 사춘기 딸 때문에 차마 이혼은 못 했다. 바람피운 사람과 정리했으니까 다 잊고 살자는 뻔뻔한 남편의 모습에 화병과 우울증이 생겼다. 남편과 함께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남편에게 딱 6개월만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어 따로 나가 살라고 사정했다. 남편은 원룸을 얻지 않고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3개월 얹혀살다가 딸이 보고 싶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돌아온 후에는 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은 달라진 게 없었다. 미안한 내색도 없었다. 어쩌다 바람피운 일을 꺼내면 다 용서하고 지나간 일을 들먹거린다며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러다 딸이 타지방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영주 씨는 이때다 싶어 혼자 사는 딸이 걱정된다는 핑계로 학교 근처에 딸과 함께 살 집을 얻었다. 혼자 살게 된 후로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는 모양이었다. 가끔 집에 가면 술에 취해 들어와 딸과 영주 씨에게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사는 건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딸에게도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길이 창창한 딸에게 이혼 가정 출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별거를 끝내고 합치지도,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에 영주 씨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이혼으로 가는 과정… 별거
이혼할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같이 살 마음도 없을 때 선택하는 게 별거다. 이혼을 피하려고 별거를 시작하지만 결국 이혼하게 되는 부부가 많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든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든 별거를 통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요즘은 배우자에게 신뢰나 애착이 확실히 생길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며 실험하듯이 살아보는 신혼부부가 많다.”며 “결혼에 대한 책임이나 극복보다는 상대 분석에 집중해 동거와 별거를 반복하다 이혼하는 신혼부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함께 산 지 오래된 부부는 권태기가 오거나 멀어지는 계기가 생기면 자신이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부부생활에 가려져 있던 자신을 찾으려 한다. 그러다 배우자가 바뀌지 않으면 평생 같이 살기 힘들겠다는 결론에 도달해 불만을 표현하고 변화를 바란다. 나도 나를 바꾸기 힘든데 배우자가 바뀌기는 쉽지 않으므로 이런 생각에는 갈등이 따라오기 쉽다.
단점이 월등하게 많지만 장점도 있는 배우자이므로 헤어지기는 싫고 그렇다고 이렇게 살면 자신이 너무 불행해질 것 같다. 그러면서 ‘서로 떨어져 살면서 시간을 좀 가져보자.’며 별거를 하게 된다.
김미영 소장은 “별거는 이혼의 전주곡이라는 말처럼 섣부른 별거는 별거의 반복을 부르기 쉽다.”고 우려한다.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고 별거를 선택한다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이가 좋아질 기회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별거가 반복되거나 오래되면 이혼만이 불안한 생활을 청산하는 ‘서로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별거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단기적인 별거라면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김미영 소장은 “단기적으로 별거를 하면 상대의 상처를 자극하는 일을 멈추게 되고 자신의 어두운 면을 돌아보게 되며 배우자의 가치를 재평가하거나 나와 가족을 진정한 관계로 재정립할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별거를 끝내는 방법 3가지
섣부른 판단으로 지금 별거 중이고, 여전히 사이가 회복되지 않았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별거를 포함해 지금껏 이혼까지 가지 않기 위해 애썼던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한다. 부부가 해 온 방법이 안 통해서 결국 별거까지 온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앞으로는 부부가 각자 가진 문제점을 찾아보고 서로에게 원하는 점을 교환한다. 그리고 원하는 점을 채워주기 위해 이해하고 타협하고 노력한다.
둘째, 별거해도 안 되면 이혼밖에 없다는 생각을 지운다.
별거해도 안 되면 이혼이 아니라 다시 합쳐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합친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만 합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미영 소장은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 안의 행복을 지키도록 연습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계속 뭔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셋째, 배우자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별거를 선택한 것은 이혼은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통해 배우자의 단점이 아닌 장점만 보도록 한다. 김미영 소장은 “배우자의 장점을 글로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화가 날 때마다 배우자의 장점 목록을 보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조언한다.
별거 대신 동거로 마음 돌리는 법
만약 계속되는 불화를 못 이겨 배우자가 별거를 원한다면 김미영 소장은 다음의 5가지 노력을 해보길 제안한다. 단순히 별거가 아니라 이혼을 막는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실천한다면 배우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1. 배우자를 불행하게 하는 점을 들어보고 그것을 줄이는 노력을 한다.
2. 문제가 있으면 진정한 사과를 하고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변화 계획도 알려준다. 주 5회의 술을 주 1회로 줄이겠다는 등의 변화도 포함된다.
3. 배우자의 문제인데 배우자가 귀를 닫고 있다면 ‘내가 문제인 것 같은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전문가를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해 상담 기회를 잡고 부부관계 전문가로부터 자신의 문제임을 듣게 한다.
4. 성인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의견도 들어본다.
5. 상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과 상의하고 도움을 청한다.
사실 별거 자체보다는 별거를 통해 상대가 변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별거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별거 제안에 숨겨진 속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김미영 소장은 “부부 관계가 느슨해지는 것은 자연적이며 이것이 보편적인 부부의 삶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별거를 쉽게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김미영 소장은 가족치료 전문가, 상담심리 전문가이며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상담위원, 서울경찰청 경찰상담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과 서울동부지방법원 이혼상담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유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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