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
부부가 배우자를 못 믿는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다. 믿음은 우격다짐으로 생기지 않는다. 눈물의 호소에도, 양심선언에도 한 번 돌아선 마음은 되돌아오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배우자를 믿지 않으면 행복한 결혼 생활이 어렵다.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차야 할 마음에 오해나 착각이 가득 채워진다. 그래서 믿음 없는 결혼 생활은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다름없다. 어렵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어려우니까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바로 배우자와의 신뢰 쌓기다. 다행히도 그 방법은 부부 생활 가까이에 있다.
첫 번째는 설마 또 그럴까 싶었다. 두 번째는 그 정도 화를 냈으면 성인이니까 알아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15년째 남편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더구나 스케일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현미(가명) 씨는 자영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 남편이 처음부터 좋았다. 솔직히 돈이 많다는 말에 더 끌렸던 건 사실이다. 자신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남에게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 선배, 후배 가리지 않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두말없이 빌려줬다. 떼이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빌려주지 말라고 하면 “내가 번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고 큰소리쳤다. 몇 년 전에는 지인에게 큰돈을 사기 당했다.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사춘기 아이들을 생각해서 가까스로 참았다. 남편은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미 씨는 툭하면 돈을 빌려준 일이 있는지 추궁했다. 남편이 자리를 비우면 이체 내역을 보려고 휴대폰도 몰래 본다.
그런데 최근에는 시부모님이 집을 새로 짓는데 현미 씨와 상의도 없이 남편이 집 짓는 절반의 돈을 내기로 약속한 것을 알게 됐다. 남편에게 따졌더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었다. “미리 말했으면 못 하게 했을 거 아니야!”라고 소리를 빽 질렀다. 말문이 턱 막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결혼생활에 한계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답이 없다는 말은 딱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20분째 집 밖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혁규(가명) 씨는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퇴근했다고 메시지를 보낸 시간을 보면 분명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내는 오지 않았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별 상상이 다 들었다. 남자 동료와 바람을 피우는 상상, 모르는 남자가 작업을 걸어 함께 술집에 들어가는 상상 등 자꾸 이상한 장면이 맴돌았다. 마침 저쪽에서 아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오는 것이 보이자 비로소 몹쓸 상상이 끝났다.
아내는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모습과 아내의 모습이 겹쳤다. 혁규 씨가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울면서 어머니의 짐을 싸고 있었다. 며칠 후 할머니가 같이 살자며 자신을 데려갔다. 어머니를 찾는 어린 혁규 씨에게 할머니는 미국으로 돈 벌러 떠났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바람이 나서 아버지와 동생과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을.
사실 요즘은 이런 자신 때문에 아내도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아 더 겁이 났다. 아내는 틈만 나면 전화하고 나갈 때마다 누구와 뭘 했는지 꼬치꼬치 묻는 혁규 씨를 이해 못 했다. 오늘도 자신을 못 믿고 집 앞에 나와 있었다고 화를 냈다. 혁규 씨도 아내를 믿고 싶다.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죄 없는 아내를 의심하는 못난 남편일 뿐이었다.
부부가 믿음을 얻는 데는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을 온전히 믿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란 게 참 야속하다. 믿음을 쌓기는 무척 어려운데 믿음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때론 단 한 번의 실망으로 그동안 쌓아온 배우자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다. 다시 상대에게 믿음을 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뢰를 깬 사람도 처음에는 미안하지만 점점 지쳐간다. 앞으로 안 그런다고 하는데 쉽사리 믿지 못하는 상대가 미워진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오래 걸려도 믿음은 다시 복구해야 한다. 믿음 없이는 행복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부부의 불신은 부부의 근간을 흔드는 현상이며 관계가 어긋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믿음이 없는 부부의 삶은 안정되지 못하고 갈수록 관계가 깨진다. 불신 자체가 부정적 사고를 만들어 오해를 만들고 착각을 일으킨다.
부부가 배우자를 못 믿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개인의 경험과 배우자의 문제다.
불신을 만드는 개인의 경험은 ▶차별당한 경험 ▶왕따를 당한 경험 ▶부모가 외도한 경험 ▶부모의 부부싸움을 자주 접한 경험 ▶부모가 이혼한 경험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있으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긴다. 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자의 무시, 무관심, 약속 어김이 있을 때 과거와 유사한 공포를 재경험해 배우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 있다.
김미영 소장은 “이 경우는 부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해하므로 부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어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고 말한다. 과거 위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과거의 트라우마와 불안을 치료하는 것이 먼저다. 공포와 불안을 완벽하게 해소하고 그 자리에 차근차근 믿음을 쌓아 나가면 된다.
믿음을 깨는 배우자의 문제는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단골 이혼 사유가 되는 돈 문제, 이성 문제, 원가족 문제, 성격과 태도 문제다. 각각의 문제에서 믿음이 깨지는 이유와 그 해결법을 알아본다.
김미영 소장은 “주로 돈 때문에 신뢰를 깨는 상황은 갚지도 못할 빚을 내는 경우,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줘 놓고 사기를 당하거나 떼인 경우, 배우자 몰래 친가 가족에게 돈을 주는 경우 등이 흔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 부부 힘의 균형이 깨져서 믿음에도 금이 갈 수 있다.
돈이 투명하게 흐르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돈에 대한 불신은 ‘당신이 내게 마음이 없어 돈을 속인다.’는 의미다. 부부의 재산은 공동 소유다. 서로 알 권리와 알릴 권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투명하게 관리한다. 돈을 버는 것도 ‘공동부양의무’를 가지는 것이 좋다.
외도는 공들여 쌓은 신뢰를 한순간에 깨뜨려 상대가 등을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또 사랑에 빠진 것뿐 아니라 성 매수, 유흥업소 출입 등도 마찬가지로 배우자의 신뢰를 깨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김미영 소장은 “외도는 신체적 폭력보다 더 아픈 심리적 폭력이 되어 죄 없는 배우자를 의처증, 의부증, 망상장애의 늪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행동”이라며 “반성과 사과를 통해 배우자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도 당사자는 배우자의 상처를 공감한다. 진정한 사과를 하고 일정 기간 근신한다. 빠른 귀가로 외도가 완전히 끝났음을 증명한다. 배우자가 원하면 핸드폰 통화 내역, 카드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핸드폰 명의 변경을 한다. 확실히 배우자에게 돌아왔다고 보여주는 것이 빨리 믿음을 되찾는 길이다.
외도 피해 배우자는 외도에만 갇혀 살지 않도록 한다. 외도 생각이 안 나도록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뭔가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아울러 추궁, 집착, 감시를 그만두고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한다.
김미영 소장은 “외도를 용서하고 사과한 후에는 가사와 육아에 대한 역할을 분담하고 운동, 취미 생활, 여행 등 부부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다.
부부가 된 것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이제 이 가정이 인생에서 1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가족과의 지나친 밀착으로 인해 부부 중심의 문제 해결이 아닌 원가족 중심의 문제 해결을 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것은 결혼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배우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과 평생 함께 살 사람은 원가족이 아닌 배우자다. 덜 소중한 것을 잡으려고 더 소중한 것을 놓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원가족에게도 독립된 가정을 꾸릴 것을 알리고 지나친 개입이나 간섭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부부 중심의 삶이 우선이 된 가운데 양가 집안에 적당한 도리를 하는 것이 좋다.
뭘 해도 무시하는 말투, 이기적인 행동, 반복되는 거짓말 등은 신뢰를 깨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라고 해도 예의는 지키자. 세상에 함부로 해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우자가 자신에게 맞춰주는 모습과 성숙해지는 모습에서 믿음이 쌓이고 사랑이 쌓인다. 무조건 맞춰주라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지키고 배려해달라는 것이다. 나를 위하는 배우자의 변화가 믿음 마일리지를 팍팍 높인다.
정유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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